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튼 대전차군단 (문단 편집) == 여담 == 영화상에선 패튼의 모습은 [[전쟁광]]으로 실제 패튼과 매우 똑같다. 역시 명연기답게... 영화상에서 유럽 전선에 금방 파병되어 지칠대로 지친 아군에게 쉴 시간을 줄 것을 요구하던 대대장 대신 대대참모인 소령에게 지휘권을 주면서 닥치고 돌격하라는 명령[* 사실 나치 독일군도 설마? 그렇게 지쳤는데 금방 공격할까?라고 생각했고 패튼의 닥치고 공격 명령으로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은 그만큼 사상자가 많았다.]을 내린 후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령이 멀어져가는 패튼을 가리키며 "대대장님, 저 개새끼가 뒈져버리길 바라는 병사가 5만 명은 됩니다."라고 욕을 퍼붓자, 대대장이 아무 말없이 무언의 공감을 한다든지, 이 전투 이후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 사상자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붕대와 피투성이로 미군 부상병들이 곁을 지나면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거나, 멀어져가는 그를 보고 미군 사병들이 "저기 보라구! 피와 배짱의 미친 장군이 나간다!", "그래, 우리의 피와 놈의 배짱."[* 영어에서 배짱(gut)있다는 표현은 직역하면 내장이라는 뜻이다. 즉 피와 사람 내장으로 범벅이 됐다는 뜻도 된다.] 이런 대사들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소리 들었는지 알만하다. 극중 이탈리아에서 한 농부가 당나귀들을 끌고가다 다리 위에서 당나귀들이 말을 듣지 않아 미군 진군이 늦춰지자 직접 가서 그 당나귀들을 전부 쏴죽이고 치워버린 일도 역시 재현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패튼이 실제로 일으킨 '''실화'''다. 전사자가 가득한 전쟁터에 가서는 "하느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이게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서 [[오마 브래들리]]는 '''"선배님과 제가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전 훈련을 받아서 이 일을 하죠. 하지만 [[전투광|선배님은 전쟁이 즐거워서 전쟁을 하십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데, 패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의 유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패튼의 손자이자 영화각본가, 소설가인 벤자민 패튼(1965 ~ )은 '''"이 영화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외손자는 "내가 어릴 적 뵈었던 '''외조부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연기력의 승리. ||<#FFFFFF,#191919> [youtube(dObTXYa-_n4)] || ||카세린 전투에서 롬멜의 전차부대를 격파하고 '''"[[에르빈 롬멜]], 이 등신같은 자식, [[지피지기|네 책을 읽었단 말이다!]]"'''라고 외친다.[* 정작 롬멜은 저 장면에서 병 때문에 본국으로 소환되어 자리에 없었다(...)] || 전차로는 그 당시의 전차를 거의 쓰지 않고 [[M47 패튼]], [[M48 패튼]]이 미국, 독일 양측에서 등장한다. ~~패튼 영화에는 패튼 전차지~~ 드물게 [[M24 채피]],[* 유일하게 작 중 시간대와 동일한 전차다.] [[M41 워커 불독]], [[M44 SPH]]가 나오며, [[M7 프리스트]] 자리는 [[M37 HMC]]로 대체해 작중 나오는 자주포는 보통 M37이다. 이 장비들은 촬영지이기도 한 스페인의 육군 장비들을 대여해서 촬영했다. 배우 [[조지 C. 스콧]]은 [[베니토 무솔리니]]를 다룬 드라마 3부작 (한국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 2월 2일부터 5일까지 4부작으로 나누어서 KBS2에서 오전 12시(2일에만 오후 1시)에 [[더빙]] 방영)에서 무솔리니 역을 맡기도 했다.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마치 그가 이런 독불장군 전쟁광들을 흠모하는 사람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있는데, 스콧은 그냥 훌륭한 배우였을 뿐 절대 이런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카데미 위원회에 자신에게 패튼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시상하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했는데, 그럼에도 아카데미가 남우주연상을 그에게 안기려고 하자 시상식에 나타나지도 않아 프로듀서가 대리로 수상했다. 평소에도 "모든 연기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며, 이를 서로 비교하고 경쟁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우는 오직 자기 자신과만 경쟁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며 아카데미상 자체를 부정하던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하고 1975년 7월 26일, 8월 2일에 1, 2부로 나누어서 [[주말의 명화]]에서 더빙 방영했다. 1982년에 KBS1에서 한국어로 더빙되어 방영한 바 있다. 이 때 패튼의 성우는 [[김병관(성우)|김병관]]. [[VHS]]도 대우 폭스비디오 클럽을 통해 1992년에 출시. 이후 1995년 6.25 특집으로 6월 24일 오후 12시 40분에 MBC에서 더빙 방영했다. [[분류:1970년 영화]][[분류:미국의 전기 영화]][[분류:전쟁 영화/제2차 세계 대전]][[분류:20세기 스튜디오]][[분류: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분류: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분류: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